1. 띠모크라시 구독자분들과 대전 시민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국혁신당 서구청장 예비후보 유지곤입니다. 지금 만 45세고요, 정당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 청년의 마지막 맏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제가 청년 후보로서 치르는 마지막 선거가 될 것 같아요.
대전에서 태어났고, 서구에서 세 아이 키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타임월드 백화점 주차 요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년 정도 일하다가 불꽃놀이가 좋아서 1인 기업을 창업했습니다. 이름이 '유지곤 폭죽 연구소'예요. 이름 걸면 열심히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10년 정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불꽃연출가가 돼 있더라고요. 한화그룹 하청업체 대표를 거쳐 한국노벨화약 대표이사까지 했고, 여의도 불꽃축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수많은 불꽃축제를 연출했습니다. 괌이랑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도 했고요.
불꽃 연출을 그렇게 오래 한 이유는, 내 손짓 하나로 수만 수십만 명에게 탄성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치에 도전할 때도 따뜻한 정치, 포용과 복지 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만학도로 대학에 가고, 결혼하고, 벤처 창업을 했습니다. 카이스트 창업원에서 이동 약자를 돕는 모빌리티 기업 '카이로보틱스'를 창업했습니다. 취업 고민, 창업 실패, 현대자동차그룹과 미국 CES 진출까지 두루 경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어 도전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대변인과 조국 대표 특보를 맡고 있습니다.
2. 띠모크라시 구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서구의 상점이 있나요?
저희 어머니가 하시는 곳을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도안동 골목가에 있는 향옥 찻집입니다. 어머니께서 매일 직접 끓이시는 대추차랑 쌍화차가 가장 유명해요.
‘향옥’은 어머니 성함입니다. 가게 이름 지을 때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브랜드는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래서 어머니 이름을 가게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요새 서구 노포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의 삶을 구정 중심에 두겠다는 게 제 가장 중요한 방향이거든요.
3.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때는 바야흐로 2021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왔어요. 그 전까지는 관심 없었습니다. 그냥 성공을 목적으로 달려가는 사업가였고요. 그날도 비 오는 날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창업 과정에서 정책이나 행정이 늘 현실과 거리가 있고 느리다는 걸 계속 느껴왔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직접 한번 바꿔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이겁니다. “창업가로 20년 이상 살면서 정책과 행정은 늘 현실과 거리가 있었고 상당한 불편감을 느꼈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봐야겠다” 자신도 있었어요.
4.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서구청장 경선 이야기를 해주세요. 전략공천으로 사퇴하고 선대위원장을 맡게 된 심정이 어땠는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공천을 받은 게 아니라 공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 서구청장 출마 선언을 했는데, 정치에 대해 너무 몰랐어요. 국회의원의 허락을 받고 출마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정치가 폐쇄적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그냥 순수하게, 기자회견하고 열심히 하면 당원들이 지지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죠.
처음 여론조사에선 포함도 안 됐다가 첫 여론조사에 이름이 들어갔는데 6위더라고요. 민주당 후보군 6명 중 꼴찌였는데 저는 기뻤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뒤로 떨어질 일은 없잖아.’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 좀 기적처럼 올라가더라고요. 타임월드 주차 요원 출신이 구청장 후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했고, 경광봉 들고 교통 정리하면서 선거운동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1위가 됐어요.
경선룰이 총 여섯 번 바뀌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묵묵히 했고 경선 최후의 1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어요. 경선이 이미 끝났는데 경선을 취소하고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법적으로 대응하면 후보가 될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많은 당원들이 장종태 후보의 복귀를 지지했고,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저에겐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전화를 꺼놓고 며칠 잠수를 탔어요.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후보 사퇴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는 게 참 눈물 나는 일이었습니다. 장종태 후보님이랑 통화하면서 실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결국 대전시의회 기자실을 찾아 사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장종태 후보에게 부족한 청년층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조력자가 되겠다, 하지만 다시는 청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순간 이미 다음 총선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구청장으로는 공천 문화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국회의원이 돼서 우리 지역만큼은 이런 일 없게 만들어야겠다고요.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정치 첫 도전이었고, 내가 선택한 정당과 나를 지지해준 당원들을 위해 희생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 2024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배경과 당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서구청장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순간부터 이미 총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총선 여론조사에서 연속 두 번 2위를 했어요. 1위는 장종태 전 서구청장이었고, 예비후보 약 6명 중 2위였습니다. 분위기는 좋았고 자신도 있었어요. 다자구도가 아닌 양자구도에서 변화를 원하는 표를 결집하면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컷오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여론조사 2위인 저를 탈락시키고 1위와 3·4위로 경선을 치른다는 거였어요. 1위에게 너무 유리하게 짜인 경선이었고, 결산도 없는 원샷 경선이었습니다. 유지곤을 탈락시키기 위한 경선이었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그렇게 보이고요. 중앙당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인용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안건 상정도 되지 않고 서류가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문화에서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시민 400명 추천서를 받아 무소속 시민후보로 등록하고 선거 운동을 시작했어요.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단 한 번도 민주당을 비난하거나 장종태 후보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선택했던 정당이었으니까요.
전국 최초로 무소속 후보로 TV 토론회에 나갔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의 동의를 받아서 나갔습니다. 낙선은 했지만 무소속으로 3위를 했어요.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후회도 안 합니다. 다만 막대한 선거 비용 청구서와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낙선 후에는 시민으로 돌아와서 장애인 아동들과 지리산 다니기, 보육원에서 토스트 만들기 같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회복했습니다.
6. 구독자분 질문인데요. 선거 때마다 장종태 의원이 등장했는데, 지금도 연락하시나요? 감정이 있지는 않은지요.
연락합니다. 저는 이걸 제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청장 재직 시절에 저는 서구 NGO 단체 대표였고, 아주 좋은 관계였습니다. 서구청장으로 출마할 때도 찾아뵙고 상의드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시장으로 나가시면서부터 제 인생에 묘하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 정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장종태 의원님입니다.
그렇다고 원망하거나 욕하지는 않아요. 그런 일들이 일어난 건 제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정상적인 일들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걸 막아내는 것도 정치력이거든요. 그런 정치력을 갖추지 못했던 저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행사에서 뵈면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의원님도 따뜻하게 대해주십니다. 건강하게 국회 활동 잘 하셨으면 좋겠고요.
다만 저는 우리 정치가 너무 연로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종태 의원님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은 존경심이고, 우리 정치는 좀 더 젊어질 필요가 있어요. 젊은 세대는 분명히 많이 과소대표되고 있습니다.
7. 조국혁신당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냥 시민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황운하 의원님께서 입당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황운하 의원님은 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으로 계실 때 저에게 여러 일을 맡겨주셨고, 신뢰가 있던 관계였습니다.
의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조국혁신당은 벤처 정당이다. 자네 같은 친구가 와서 할 일이 많다." 그 말 듣고 입당했습니다. 영입 인재로 들어간 게 아니라 평당원으로 가입했어요. 오히려 그게 더 좋았습니다. 인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 괴리감이 생기거든요. 예비당원으로 시작해서 당원들과 진짜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조국혁신당 보궐선거 지원, 불법 계엄·내란 종식 활동, 키세스단 활동 등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동지 의식이 생겼고요. 어느새 대변인, 당대표 특보 역할도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황운하 의원님께서 서구 지역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하시면서, 지방선거에서 서구청장 후보로 서구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고 하셨어요. 고민 없이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감사하게도 서구가 조국혁신당의 10대 기초단체장 집중 선거 지역에 포함됐습니다. 소수 정당이지만 강합니다.
8. ‘민생 혁신 서구청장’이라고 하시는데, 구청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민생 혁신이란 무엇인지요.
기성 정치인들이 구청장을 하면서 나아진 게 있었나요? 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저는 진짜 혁신을 해본 사람이에요. 로보틱스 모빌리티, CES 무대,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 본사도 다녀봤습니다. 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혁신은 결국 당장 어르신들이 병원 가기 편하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데 문제없고, 내 가게 장사가 잘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생활 혁신이에요.
다들 반도체 단지 유치니 거대한 혁신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그건 그들이 안 해도 시대가 변하니까 이루어지는 혁신입니다. 그분들의 능력으로 하는 혁신이 아니에요.
제가 이야기하는 혁신은 이겁니다. 둔산권 도심 인프라를 활용해서 ICT 테크 기업들을 유치하고, 스타트업 창업의 메카로 만든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효과를 자영업자, 사회적 약자, 지역 문화예술인 등 지금까지 과소대표돼왔던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전통 제조업 대기업을 평촌산단에 유치한다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현실적인 방향은 ICT 테크 기업이에요.
저는 대기업과 일해봤고, 협업을 이끌어본 사람입니다. 창업가 출신이니까 추진력도 있고 눈치도 잘 안 봅니다. 그래서 역동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겁니다.